프랑스 사상가 모리스 리즐링은 말한다. “결국 인생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 하지만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우리는 수시로 깨닫는다. 여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고 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철학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삶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받는 것은 어떨까?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기이자, 그들의 삶과 작품 속의 지혜가 우리 인생을 개선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매력적인 글솜씨로 “빌 브라이슨의 유머와 알랭 드 보통의 통찰력이 만났다”는 평가를 받는 에릭 와이너가 이 여행의 동반자로 나선다.
“우리에겐 늘 지혜가 필요하지만 삶의 단계마다 필요한 지혜가 다르다. 열다섯 살에게 중요한 ‘어떻게’ 질문과 서른다섯 살, 또는 일흔다섯 살에게 중요한 질문은 같지 않다. 철학은 각 단계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나눈 언어들💌
1. 내가 좋았던 철학자 / 인상 깊었던 부분
에피쿠로스 3표 (+ 시몬 베유) 👉 에피쿠로스를 통해 가짜 쾌락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어떤 것이 진짜 쾌락일까 고민하고 ‘충분히’ 좋은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너머의 가짜 쾌락을 추구하면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욕심내고 스스로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욕망의 대상이 문제라고 하지만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행위 자체가 문제이다. 아타락시아, 즉, 정신적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중요하다. 👉 충분한 거로 충분하지 않은 사람은 그 무엇도 충분하지 않다. 요즘 들어 많아진 플렉스, 욜로 문화는 조금씩 모아서 성취하는 게 아니라 즐긴다는 개념이 강하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텅 빈 욕구인 하나인 호캉스 같은 경우도 몇 달에 한 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뭘 채우기 위한 것인가 생각이 든다. 👉 친구들에게 어디까지 가지고 이뤘을 때 만족을 하는지 물어보곤 한다. 나도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에 익숙해있던 터라 더 많은 욕구를 갈망해왔다. 에피쿠로스의 텅 빈 욕망에 대한 정의를 보고 여태까지 더 많은 것들을 갖기 위한 나의 생각에 돌을 던지게 되었다.
+ 현대사회에서 에피쿠로스처럼 진짜/가짜욕망을 구분하기 어렵지않을까? 👉 현대 사회는 이미 많은 걸 경험하고 대리적으로 알게 된다. 과거엔 정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무언가를 가지거나 누리는 사람들이 행복할 거라는 걸 볼 매체가 없었지만 최근에는 SNS가 만연하여 쉽게 소비라는 자극에 노출된다.
+ 고통과 쾌락의 수준을 비교해서 행동하는 것은 에피쿠로스의 정신에 부합하는가? (ex. 나파에 사는 롭의 오페라 티켓, 부자인 친구의 캐비어 취향) 👉 에피쿠로스도 가끔의 사치는 즐겼다. 분수에 맞는 행동이면 맞다고 할 수 있다. 👉 부나 능력은 상대적이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며, 현재에는 가능한 삶이지만 없어졌을 때도 갈망하냐가 그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목적성도 중요한데 단순히 정적인 쾌락 차원에서 배부름을 위해서는 캐비어가 아니어도 된다. 욕심부리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요리사에게는 지적 쾌락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의미 없는 쾌락일 수 있다.
2. 소크라테스처럼 살고 싶은 질문은?
삶의 단계마다 다른 질문(철학) 👉 철학이라는 개념이 질문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처럼 무겁고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늘 끊임없이 가져야 하는 물음이라고 생각이 든다. 10대 때는 소로의 저항정신에 20대인 지금은 니체의 아포리즘에 끌린다. 아직 어떤 철학으로 살아갈지는 모르지만 30대 이후로는 영향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것이 많을 것 같다. 삶의 단계별로 공감하는 철학이 다를 것 같다.
의미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 질문을 할 때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우주에서 우리는 작은 존재로 느껴질 때 지금 있는 삶이 의미가 있을까싶다. 그동안 영향을 미친 것도 없고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왔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한 게 없다면 의미 없는 인생일지 남의 평가에 따라 좌우될지, 사회적인 가치를 이끌진 못하더라도 내가 행복했으면 의미 있는 삶인지 등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정답을 내리지는 못하였지만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그런 유의 사람들은 의미 있는 삶으로 남을 것 같다고 본다. + 출산과 결혼은 변화라는 의미에 초점을 둔 삶일 수도 있다.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 될 수 있는가? 👉살면서 사람의 에너지는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부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특히나 뚜렷하고 건강하며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늘 감탄하고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있고 늘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쉽게 불평하지 않으며 새로운 관점으로 대상을 보고 말을 고르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 성찰을 지속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나는 쉽게 감정적이라서 늘 새로운 관점에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상쾌한 느낌을 받고는 했다.
3. 소로의 ‘보기’, 루소의 ‘걷기’, 쇼펜하우어의 ‘듣기’ 중 자신에게 제일 잘 맞는 방법?
소로의 보기 👉자연과 미술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배경지식이 잘 없어도 무의식적으로 좋은 자극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각적으로 엄청 예민하진 않지만 힐링의 방법으로 보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어찌 보면 소로처럼 스캔하듯 나만의 방식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 다만 소로는 어디서도 자신의 관점을 찾는데 아직은 그러한 관점은 찾지 못한 것 같아 소로처럼 보기 위해 노력해 보아야겠다. 👉 지하철에서 시간을 보낼 때 관찰을 좋아한다. 보이는 것에서 단서를 찾고 확장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걸 좋아한다. 소로는 맛을 음미하듯 천천히 어떤 사물 안에서도 무언가를 찾아내는데 나도 앞으로는 그렇게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루소의 걷기 👉 운동을 좋아하는데 이는 루소의 걷기와 닮은 점이 많다. 운동을 하다 보면 하나의 생각에 집중을 하거나 잡생각이 사라진다. 내뱉는 하나의 숨에 움직이는 근육에 집중을 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걷기를 하면서 영감을 많이 얻는 것 같다.
4. 보부아르의 <노년>을 보고 작가가 정리한 '늙어가기 위한 10가지 방법' 중 각자가 선택한 방법은?
'친구를 사귈 것' /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 '호기심을 잃지 말 것' /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 사람으로 자극이나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들과 만날 때 단순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느꼈다. 👉 타인의 생각을 너무 신경 써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인생이 포켓몬 세계라고 할 때, 나는 피카츄면 라이츄가 되기 위해 집중해야지 리자몽이나 거북왕이 될 수 없으며 나만의 속도와 방향성을 생각해야 한다. 👉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자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나이 들지 않고 새롭게 익히고 영혼을 늙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 결국 제일 중요한 부분은 노년을 맞이할 때 건설적으로 건강하게 물러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걸 갖춰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 '습관의 시인이 될 것' 👉 나도 모르게 말보다 행동이 앞설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간섭을 하고 저 사람이 이걸 싫어했으면 어떻게 하지 생각할 때가 있다. 이런 모습이 부끄럽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여 물어보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말이 정신적으로 늙게 만든다. 👉 단조로운 일상이 될 수 있지만 무엇이든 성취하겠어라고 시작하면 프로젝트가 된다. 인생은 갈수록 더 재미 없어지고 단조로워지기 때문에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 긍정적인 호기심은 어려울 수 있으니 할 일을 만든다. 👉 게으른 J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건전한 습관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호기심을 잃지 말 것’ 👉 내가 생각했던 서른의 모습과 서른을 코앞에 둔 현재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여전히 불안하고 흔들리고 서투르다. 이에 따라 새로운 일들에 흥미가 없고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게 된다. 삶의 의미를 찾고 잘 늙기 위해서 호기심을 잃지 말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아직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가 좋아한 언어들💌
“충분히 좋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에피쿠로스는 그저 앞에 있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었다. 충분히 좋기만 해도 완벽한 진짜 쾌락의 모습은,
여러 가지 가짜 쾌락이 넘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